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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촌 이야기

“나는 지금도 배운다” – 이진옥 씨의 귀촌 일기

“나는 지금도 배운다” – 이진옥 씨의 귀촌 일기

글: 강창모 기자

 

고창에서 다시 찾은 나의 시간

“나이 먹는다고 배우는 게 멈추진 않더라고요.”

전라북도 고창의 한 시골 마을.
해 질 무렵이면 마을 작은 창고에 불이 들어온다.

 

그 안에선 72세 이진옥 씨가 벽지 한 장을 조심스레 재단하고 있다.
흰 머리를 단정하게 묶고, 얼굴엔 집중한 표정이 떠 있다.

바쁜 삶을 지나, 나를 돌아보다

서울에서 국밥집을 운영하던 시절, 그녀는 하루도 편히 앉아본 적이 없다.
남편 없이 세 아이를 키우느라 늘 숨이 찼다.
그 긴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문득 혼잣말이 나왔다.

“근데 이제 나는, 뭐 하며 살아야 하지?”

귀촌은 큰 결심이 아니었다.
딸이 전원생활을 추천했고, 이 씨는 그냥 따라 나섰다.
그런데 낯설게 고요한 시골의 저녁은 생각보다 마음 한구석을 파고들었다.

도배라는 새로운 배움의 문턱에서

어느 날, 마을회관에 도배 수업이 열린다는 전단을 보게 됐다.
‘내 나이에 뭘…’ 하다가도, 괜히 손이 그 종이를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처음엔 칼질도 삐뚤었어요.
근데 이상하죠. 그게 또 재밌더라고요.”

3개월이 지나자, 이 씨는 안방 벽지를 새로 바를 정도가 됐다.
마을 이웃들이 와서 도와달라 하면, 겸손히 웃으며 도와준다.

웃음이 오고 가는 공간

그녀는 창고 한쪽에 작은 작업대를 만들었다.
풀이 담긴 통, 붓, 자, 장갑…
때때로 마을 아이가 놀러와 앉는다.

“할머니, 이거 저도 해봐도 돼요?”
“그럼. 조심해서, 이 선 따라서 쓱쓱 그어봐.”

아이와 눈이 마주친다.
거기엔 웃음도, 따뜻함도 있다.

이진옥 씨는 말한다.
“배운다는 건, 살아 있다는 느낌을 되찾는 거예요.”

기자는 생각했다.
배움은 학교나 자격증에만 있는 게 아니라고.
어쩌면 가장 깊은 배움은,

내가 다시 '나'로 돌아오는 그 과정에 있는지도 모른다.

“이 나이에도요.
아직 나를 새로 만들 수 있다는 게 참 좋아요.”

지금도 그녀는 붓을 들고, 작은 창고 안에서 내일을 그린다.
손끝에 힘을 주며 한 줄 한 줄 벽지를 바를 때마다,
그 안에 담긴 건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살아온 날들에 대한 고요한 찬사다.
이진옥 씨의 하루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 본 콘텐츠는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창작 기사이며,
등장 인물은 모두 가명입니다.
※ 본 콘텐츠에는 AI 기반 이미지 생성 도구를 활용한 이미지가 포함되어 있으며,
실제 인물이나 장소와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