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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촌 이야기

고장난 라디오 속 음악처럼 – 고석중 씨의 느린 귀촌

고장난 라디오 속 음악처럼 – 고석중 씨의 느린 귀촌

글: 강창모 기자

 

“처음엔 심심해서 미치는 줄 알았죠. 그런데요, 나중엔 그 심심함이 고마워지더라고요.”

경남 합천. 햇살이 들기 시작하는 이른 아침, 낡은 라디오 하나를 들고 마당 평상에 앉는 남자가 있다.
올해 69세, 고석중 씨. 귀촌 3년 차, 이제는 느림이 익숙한 사람이다.

서울의 삶과 시골의 공백

서울에서 영상 편집 일을 하며 바쁘게 살아온 그는 퇴직 후에도 몸이 먼저 새벽 6시에 눈을 떴다. 하지만 할 일이 없자 멍하니 시간을 흘려보낼 수밖에 없었다.

텃밭은 하루면 다 돌아보고, TV는 몇 채널 나오지도 않았고, 말을 붙일 이웃도 드문 동네.

처음 한 달은, 솔직히 많이 힘들었다고 한다.

고장난 라디오가 다시 켜졌을 때

그런 고 씨를 움직인 건, 고장난 라디오에서 우연히 흘러나온 한 곡의 노래였다.

“고장났던 라디오가 어느 날 웬일로 켜졌어요. 그때 ‘옛사랑’이 흘러나오는데, 눈물이 나더라고요. 아, 이렇게 살아선 안 되겠다 싶었죠.”

그날 이후, 매일 아침 그는 라디오를 튼다. 시사보단 음악이, 뉴스보단 사람 목소리가 좋았다. 조용히 흘러나오는 라디오 소리가 그의 일상에 다시 리듬을 불어넣었다.

자원봉사에서 찾은 마을의 온기

“여기선 누구도 날 재촉하지 않아요. 오히려 늦게 오는 사람이 더 반갑죠.”

요즘 그는 마을방송 자원봉사도 맡고 있다. 농번기 알림 방송부터 경로당 행사 소개까지.

“내 목소리가 마을에 울린다는 게 참 묘해요.”

고 씨의 마당 한켠에는 작은 벤치가 있다. 그 위엔 커피잔, 라디오, 그리고 작은 메모장이 나란히 놓여 있다.

그의 하루는 여전히 느리지만, 이젠 그 속에 확실한 박자가 있다.

도시는 편리했지만, 여기는... 편안합니다. 그 차이를, 이제는 분명히 압니다.

느림이 주는 삶의 리듬

그는 이제 바삐 살아가는 타인의 시간에 휘둘리지 않는다. 아침엔 라디오, 점심엔 마당 정리, 저녁엔 책을 읽으며 하루를 정리한다.

‘해야만 하는 일’보다 ‘하고 싶은 일’이 많아졌다. 도시에서는 상상도 못 했던 일이다.

비가 오는 날이면 평상 아래 빗소리를 들으며 라디오를 켜고, 해가 좋은 날엔 작은 의자에 앉아 메모를 남긴다. 오늘의 날씨, 오늘의 기분, 그리고 오늘 들은 노래.


기자의 시선 | 느림이라는 속도

고석중 씨의 하루엔 대단한 사건이 없다. 하지만 그래서 더 의미 있다.

어쩌면 회복이란, 그저 조용히 나를 다시 맞이하는 시간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바쁘게 사느라 가끔 너무 많은 걸 놓친다.

그럴 때일수록, 고 씨의 하루 같은 ‘느린 이야기’가 우리 마음에 조용히 닿는다.

고 씨는 오늘도 말없이 라디오를 켠다.

그 소리엔 이런 메시지가 담겨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날이 있다”고.


🌿 작은 이야기 하나, 큰 울림이 되어
누군가의 평범한 하루가 누군가에겐 깊은 위로가 될 수 있습니다. 고석중 씨처럼 '나만의 리듬'을 찾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삶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는 말을 다시 떠올리며, 오늘 하루도 자신의 속도로 걸어가시길 응원합니다.

※ 본 콘텐츠는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창작 기사이며, 등장 인물은 모두 가명입니다.
※ 본 콘텐츠에는 AI 기반 이미지 생성 도구를 활용한 이미지가 포함되어 있으며, 실제 인물이나 장소와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