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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촌 이야기

(귀촌 이야기 14편) “우리, 처음부터 다시 살아보자고요” – 김성호·박영미 부부의 두 번째 집

※ 본 콘텐츠는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창작 기사이며, 등장 인물은 모두 가명입니다.
※ 본 콘텐츠에는 AI 기반 이미지 생성 도구를 활용한 이미지가 포함되어 있으며, 실제 인물이나 장소와 무관합니다.

귀촌 이야기 14편

“우리, 처음부터 다시 살아보자고요” – 김성호·박영미 부부의 두 번째 집

글: 강창모 기자


🏡 낯선 곳에서 다시 웃게 된 날

“여보,
우리 이사 오고 나서 처음 웃은 거 같아.”

경북 봉화. 들판 너머 산자락이 잔잔히 펼쳐진 마을에 김성호(69)·박영미(65) 부부가 산다. 귀촌한 지 8개월이 지났고, 둘은 이 집을 조용히 ‘두 번째 집’이라 부른다.

이곳에서의 시간은 서울과는 전혀 다른 결을 가지고 흐른다.

서울에서의 삶은 늘 바빴다. 아침이면 각자 출근 준비, 저녁이면 마주 앉아 말없이 밥만 먹었다.

“같이 있는데도, 같이 있는 것 같지 않았어요.”


🪵 “그냥 내려가서 조용히 살아볼래요?”

퇴직 후에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하루 종일 TV만 켜 놓고 끼니만 챙기다 날이 저물었다. 말은 줄고, 눈빛도 흐려졌다.

그런데 작년 겨울, 아내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우리… 그냥 내려가서 조용히 살아볼래요?”

남편은 망설였다.
“아프면 병원도 멀고,
아는 사람도 없고,
뭐 하나 쉬운 게 없잖아.”

하지만 아내는 조용히 말했다.

“그래도요, 당신하고 있는 시간이 지금보다 따뜻했으면 좋겠어요.”

그 말 한마디가, 남편의 마음 깊은 곳에 오래도록 머물렀다.


🌿 텃밭이 있는 집, 다시 살아가는 법

결국 둘은 봉화의 오래된 민가를 구했다.
기와지붕 아래 자두나무 한 그루 서 있는 집. 부엌 창을 열면 산이 보이고, 마당엔 아궁이와 작은 텃밭이 있다.

처음엔 모든 게 낯설었다. 장작불도, 두꺼운 이불도, 밤새 창틈으로 스며드는 바람도.

“그런데 희한하게요, 여기선 자주 웃게 돼요.”

아침이면 남편은 불을 지핀다. 아내는 국을 끓이고, 텃밭에선 나란히 허리를 굽힌다. 저녁이면 마루에 앉아 산 너머 해 지는 걸 조용히 바라본다.

빠른 도시의 시간 속에선 몰랐던 소중한 일상들이, 여기선 선명하게 느껴진다.


❤️ “이제야 알겠어요, 당신이 왜 그랬는지”

“예전엔 몰랐어요.
당신이 뭘 좋아하는지, 뭘 힘들어하는지도.”

지금은 안다. 왜 아내가 그때 귀촌을 말했는지, 왜 그 후로 말없이 웃는 날이 늘었는지.

기자는 두 사람이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을 보며 진짜 ‘귀촌’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집을 바꾼 게 아니라, 마음을 새로 살게 된 부부였다.

“우리, 이 집에서 처음부터 다시 살아보는 거예요. 그때처럼요.”

🌅 다시 시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귀촌은 단지 도시를 떠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건 잊고 지냈던 ‘함께’라는 시간을 다시 꺼내는 일,
익숙한 사람을 다시 알아가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김성호·박영미 부부에게 봉화는 단지 주소를 옮긴 곳이 아니라, 삶의 중심을 다시 놓은 자리입니다.

“다시 웃게 된 이유가, 결국 당신이었어요.”

누군가에겐 낯설고 불편할 수 있는 시골의 삶이 이들에게는 서로를 마주보게 한 따뜻한 공간이었습니다.
해 질 무렵 마루에 나란히 앉은 두 사람은
오늘도 그날처럼, 조용히 미소 짓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