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회 이슈 이야기

“버려진 건 폐지뿐일까요?” – 김영호 씨의 하루

※ 본 콘텐츠는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창작 기사이며, 등장 인물은 모두 가명입니다.

“버려진 건 폐지뿐일까요?” – 김영호 씨의 하루

글: 강창모 기자


🌇 새벽 골목을 걷는 한 남자

서울 동작구의 골목 어귀.
희미한 햇살이 담벼락 위로 스며들 무렵,
김영호 씨(83)는 수레 손잡이를 꽉 잡고 있었다.

한 발, 한 발. 오른쪽 무릎은 오래전부터 말을 듣지 않았지만, 오늘도 그는 걷는다.

낡은 점퍼 소매는 해졌고, 손등에는 검게 타고 굳은살이 박여 있었다. 수레에는 박스, 캔, 비닐 더미가 실려 덜컹이며 골목길을 지나간다.

“사람 없는 새벽이 좋아요. 누구 눈치도 안 보이고… 그냥 나 혼자 있는 시간이죠.”

그의 하루는, 세상이 잠든 틈을 비집고 조용히 시작된다.


📦 쓸모를 찾는 손길

김 씨는 말끝을 흐리고 다시 수레를 민다.
길가에 버려진 상자를 접는 손길은 익숙하면서도 조심스럽다.

마치, 종이 한 장에도 무게가 실려 있다는 듯이.

“쓸모없어진 것들, 나에겐 아직 쓸모가 있어요. 내가 그것들처럼 안 되려면, 계속 움직여야죠.”

그는 하루 평균 네 시간, 수레를 밀며 서울 시내를 돈다.

많이 벌면 1만 원을 더 챙길 수 있지만,
그보다 더 소중한 건 ‘다녀올 곳’이 있다는 사실이다.


🙈 시선과 외면 사이

“사람들이 날 보면 고개를 돌려요. 눈이 마주치면… 나보다 더 놀라는 것 같아요.”

그 말끝에 그는 웃는 것도 아닌, 씁쓸하면서도 익숙한 표정을 지었다.

삶에 치여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 풍경 속에서 그는 묵묵히 걸음을 옮긴다.

고된 현실을 말하지 않아도, 그의 그림자가 그 이야기를 대신한다.


🏚 단칸방과 아내 사진 한 장

김 씨가 사는 곳은 오래된 단칸방이다.
벽엔 낡은 달력 한 장, 선반 위엔 아내의 사진이 하나 놓여 있다.

3년 전 아내는 먼저 세상을 떠났고, 자식들과는 연락이 끊긴 지 오래다.

“혼자 먹는 밥, 혼자 자는 밤. 처음엔 적응 안 됐는데 이젠 그게 더 편해졌어요.”

그는 자신을 내세우지도 않고,
누군가를 원망하지도 않는다.

그저 고요히 버텨온 하루들이 쌓였고, 앞으로도 버텨야 할 내일만이 남았다.


🇰🇷 우리가 마주해야 할 질문

“나라가 뭘 해줘야 하지 않느냐고요? 글쎄요. 지금은 그냥, 내가 나를 챙기는 게 제일 빠르지 않을까요.”

그 말이 씁쓸한 현실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이 사회가 던져야 할 질문이기도 하다.

그가 수레를 끌고 돌아설 때, 그 그림자는 생각보다 길었다.

김영호 씨는 그저 살아내고 있었다. 거창하지도, 대단하지도 않은 하루였지만 그 하루를 '묵묵히' 걸어내고 있었다.


📝 기자의 메모 — 우리는 무엇을 외면하고 있는가

폐지는 버려졌지만, 그를 버려서는 안 된다.

어쩌면 우리는 너무 쉽게 누군가의 존재를 거리의 소음 속에 묻어버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는 누군가의 아버지였고, 남편이었고, 지금도 누군가처럼 하루를 살아내는 사람이다.

수레 위 폐지보다 더 묵직한 건 그가 살아온 시간이라는 걸, 우리 모두가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