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 창업 이야기 10편
“누군가의 아침밥이 된다는 건, 참 따뜻한 일이더라고요”
서울 외곽, 조용한 주택가의 새벽.
해가 뜨기도 전, 작은 빌라의 불이 가장 먼저 켜진다.
주방 안에선 밥솥이 김을 뿜고, 조리대엔 도시락 용기가 가지런히 놓여 있다.

🍱 도시락으로 다시 짜인 하루의 리듬
올해 일흔둘, 김석규 씨는 조심스레 밥을 푼다.
아내 박윤자 씨는 반찬을 예쁘게 담는다.
서로 말은 없어도 손발은 척척 맞는다. 오른손엔 멸치, 왼손엔 도시락 뚜껑.
결혼 45년 차 부부.
이들이 아침마다 도시락을 싸온 지도 벌써 2년이 됐다.
시간보다 먼저 쌓인 건 정이었다.
👣 은퇴 후, 하루가 괜히 길었던 날들
# 퇴직 후엔, 하루가 괜히 길었다
석규 씨는 아파트 경비원으로 38년을 일했다.
새벽 출근, 해 질 무렵 퇴근. 그 리듬 속에서 인생이 흘렀다.
그게 멈추자, 시간은 남았지만 마음은 공허해졌다.
윤자 씨는 반찬가게를 오래 운영했다.
그러다 병원 침대 위에서 젓가락질을 멈춘 순간, 가게 문도 닫았다.
오랜만에 집에 함께 있는 날들.
하지만 낮은 길고, 하루는 허전했다.
“티비도 지루하고, 아침 먹고 나면 또 점심 걱정이에요. 뭔가 다시 해보고 싶었어요, 둘이 같이.”
그 무렵 우연히 교회 전단지를 보게 된다.
‘홀몸 어르신 아침 도시락 나눔 봉사자 모집’
그걸 본 윤자 씨가 먼저 말한다.
“여보, 우리 이거 해보면 어때요?”
🥄 좁은 주방에서 피어난 부부의 일터
# 좁은 주방에서 피어난 부부의 일터
석규 씨는 퇴직금 일부로 중고 전기차 한 대를 샀다.
뒷좌석을 떼고, 보온박스를 실었다. 딸은 도시락 가방을 인터넷으로 보내줬다.
윤자 씨는 오래된 레시피 노트를 꺼냈다.
김치전, 달걀장조림, 우엉볶음, 취나물… 손맛이 기억하는 반찬들이었다.
“어르신들은 너무 짜거나 매운 건 못 드셔요. 그래서 심심하지만 고소하게, 매일 조금씩 다르게 만들어요.”
저녁엔 재료 손질, 새벽엔 밥 짓기와 도시락 포장.
이들에겐 하루의 리듬이 다시 생겼다.
❤️ 도시락 안엔 밥보다 마음이 많다
# 도시락 안엔 밥보다 마음이 많다
이 부부는 하루에 12개의 도시락을 만든다.
그중 8개는 홀몸 어르신께, 4개는 인근 작업장에서 일하는 50~60대 노동자에게 간다.
많이 남는 장사는 아니다.
가끔은 그냥 드릴 때도 있다.
그래도 도시락을 받고 웃는 얼굴 하나가 이들에겐 가장 큰 보람이다.
“누군가의 하루를 시작하게 해주는 밥… 우리한텐 그게 가장 확실한 일이에요.”
📝 함께 쌓아가는 노년의 의미
✅ 강창모 기자의 메모
- 시니어 창업은 '함께 쓸모 있는 하루를 만드는 일'이다.
- 도시락 창업은 단순한 식사 전달이 아니라 관계와 돌봄이 함께 담긴다.
- 부부가 함께 만드는 리듬 있는 하루는 은퇴 후 새로운 삶의 원동력이다.
- 작지만 정 많은 창업, 그 안에 삶의 의미가 있었다.
오늘 누군가의 밥이 되어주는 것, 그건 단순한 음식이 아닌, 마음을 건네는 일입니다.
두 손으로 만든 도시락 하나에도 서로를 향한 응원과 살아 있다는 감각이 담깁니다.
김석규·박윤자 부부처럼, 오늘도 누군가의 하루를 따뜻하게 열어주는 당신께 작은 박수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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