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 창업 이야기
“버릴 수가 없었어요. 다시 살아날 것 같았거든요”
🔧 낡은 컨테이너가 삶의 무대가 되다
충남 보령, 바람이 자주 머무는 들판 끝.
풀숲 사이로 녹슨 컨테이너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폐건물인가’ 하고 고개를 돌리지만,
문을 열면 그 안은 전혀 다른 풍경이다.
톱밥 냄새, 나무가 익어가는 냄새,
그리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낡은 트로트 한 곡.
낡은 컨테이너 안에서 목공 작업에 집중하는 이종문 씨의 모습
그 안에서 하루 종일 망치질하는 이가 있다.
올해 예순넷, 이종문 씨다.
동네 어르신들은 갸웃거린다.
“그걸 왜 고쳐요, 새로 사는 게 훨씬 낫지 않소.”
“이제는 좀 쉬면서 살 때 아닌가요?”
종문 씨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는다.
그리고 조용히 한마디를 더한다.
“쓸모없어 보이는 것들도,
다시 손 봐주면 살아나더라고요.
저도 그랬던 것 같아요.”
📎 책상 위 숫자보다 손에 익은 나무가 좋았다
서류 더미 속에서 잊고 살았던 손맛
종문 씨는 공기업에서 30년을 일했다.
책상 위에서 숫자와 문서를 다루고,
보고서 사이에 묻혀 하루를 보냈다.
말끔한 셔츠에 넥타이 매고, 커피는 늘 미지근했고,
퇴근길은 늘 같은 골목, 같은 시간이었다.
정년퇴직하고 나니, 시간이 너무 많았다.
너무 많아서 하루가 길고,
길어서 마음이 어지러웠다.
그러다 철거 현장에서
못이 삐죽 튀어나온 낡은 창틀 하나를 우연히 주워왔다.
버리긴 아까웠다.
그래서 닦고, 갈고, 다듬어봤다.
그게 작은 커피 테이블이 되었고,
그날 이후 삶도 조금씩 다듬어지기 시작했다.
“그날 맡은 나무 냄새,
어릴 적 아버지가 손수 지은 마루 냄새 같았어요.
아, 나도 이걸로 하루를 채울 수 있겠구나 싶었죠.”
🪑 손끝으로 다시 태어난 가구들
조용한 창고 한 칸이 가게가 되기까지
그때부터 거리엔 보물이 가득해 보였다.
쓰러진 책상, 다 빠진 서랍장,
사람들 눈엔 폐가구지만 종문 씨 눈엔 가능성이었다.
작업은 혼자서 했다.
유튜브를 보고 따라 하고,
모르겠으면 마을 목수에게 묻고 또 해봤다.
손에는 굳은살이 생겼고,
밤마다 라디오를 틀어놓고 나무를 깎았다.
그러던 어느 날,
리폼한 의자를 보던 아주머니가 말했다.
“이거… 얼마에 파세요?”
그 말이 낯설면서도 기분 좋았다.
리폼한 의자를 보고 가격을 묻는 손님과 작업 공간 모습
‘다시, 나무’
다시 쓰고, 다시 살아나는 것들.
그리고 다시 시작하는 자신까지 담아서.
🌱 나무처럼 다시 자라는 인생
나무는 속이지 않아서 좋다
요즘은 일주일에 세네 점 정도 완성한다.
커피 테이블, 책꽂이, 벤치, 의자…
누군가는 추억을 담아 가고,
누군가는 정성을 사간다.
SNS를 통해 주문이 들어오기도 하고,
지나는 청년들이 들어와 구경도 한다.
“나무는 참 솔직해요.
내가 대충 하면 딱 그만큼만 나오고,
정성 들이면 꼭 그만큼 응답하죠.
사람보다 덜 복잡해서 좋아요.”
📌 다시 시작할 용기, 나무에서 배운다
✅ 강창모 기자의 메모
- 시니어 창업은 ‘이윤’보다 ‘일감’이다.
- 폐자재를 새 생명으로 바꾸는 리폼 목공은
작은 공간, 적은 자본으로도 시작 가능하다. - 나무를 살리는 일은 결국 자신을 다시 세우는 일과도 같다.
- 잊고 지냈던 손맛과 땀의 의미를 되찾는 창업,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멋지다.
누구에게나 낡은 시절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안엔 다시 쓰일 수 있는 힘이 남아 있죠. 이종문 씨의 손끝에서 되살아난 가구들처럼, 우리 인생도 누군가의 손길, 혹은 스스로의 의지로 얼마든지 다시 살아날 수 있습니다. 다 늦었다고 생각한 그 순간이, 어쩌면 가장 좋은 출발점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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