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도 새벽마다 산에 올라가요. 이 버스 타고 가면, 등산로 입구가 바로 나와요.”
서울의 오래된 주택가 끝자락.
다 쓰러질 듯 작은 버스 정류장 앞에서, 한 어르신이 웃으며 말을 건넸다.
말끝마다 느껴지는 여유, 그리고 살아온 시간의 무게.
그날 아침, 나는 그분에게서 ‘늙음’이 아니라 ‘살아있음’을 보았다.
윤길수 씨, 올해 일흔여덟.
하지만 그의 얼굴엔 나이보다 선한 웃음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눈가의 깊은 주름조차 어쩐지 따뜻하게 느껴지는 사람이었다.

그는 매일 새벽 5시 반이면 집을 나선다.
허리춤까지 오는 작은 배낭을 메고, 늘 그 정류장에 선다.
서울 도심을 가로지르는 273번 마을버스를 기다리기 위해서다.
목적지는 한결같다. 북악산 등산로 입구.
“하루라도 안 움직이면, 몸이 금방 굳어버려요. 몸이 굳으면 마음도 따라 굳어요.”
그 말에 나는 말문이 막혔다.
나에겐 아무 의미 없이 지나가는 새벽이,
누군가에겐 자신을 살리는 시간이 되고 있었다.
산에서 내려오면 시장에 들른다.
그날 먹을 반찬거리를 사고,
혼자 지내는 옆집 아주머니를 위해 두어 가지 더 챙긴다.
누가 시킨 것도, 부탁한 것도 아닌데 그는 자연스럽게 그렇게 살아왔다.
“예전엔 돈이 최고인 줄 알았어요. 근데 요즘엔, 아침 햇살이 제일 고맙더라고요.”
그의 말은 가볍지 않았다.
몇십 년을 견뎌낸 사람만이 뱉을 수 있는 무게였다.
나는 생각했다.
이 조그만 정류장은 서울의 중심도, 관광지도 아니다.
하지만 그곳에 서 있는 한 사람 덕분에 그 공간이 하루의 시작이 되고, 누군가에겐 작은 쉼이 된다.
사람들은 청춘을 잃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윤길수 씨는 하루하루를 살아내며, 그 말에 고개를 젓는다.
청춘이란 나이가 아니라 태도라는 것을, 그는 매일 새벽 몸으로 말하고 있었다.
※ 본 콘텐츠는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창작 기사이며, 등장 인물은 모두 가명입니다.
※ 본 콘텐츠에는 AI 기반 이미지 생성 도구를 활용한 이미지가 포함되어 있으며, 실제 인물이나 장소와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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