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자 든 손에서 따뜻함이 흘렀다 – 강창모 기자의 일상 속 사람 이야기
서울 망원시장.
비닐 천막 사이로 햇살이 스며드는 이른 아침, 시장 한쪽에 자리한 국밥집에서 하얀 앞치마를 두른 할머니가 문을 연다.
가게 이름은 ‘성심식당’.
간판조차 바랬지만, 정작 그 안은 누구보다 따뜻했다.
김말순 씨, 올해 74세.
이곳에서만 42년째다.
남편과 함께 시작했던 작은 가게는 이제 그녀 혼자, 매일 새벽 불을 켜고 국을 끓이는 곳이 되었다.
“하루라도 손에 국자가 없으면… 이상해요. 허전하고.”
그녀는 웃으며 말했지만, 그 말엔 삶의 고단함이 자연스레 배어 있었다.
선짓국, 콩나물국밥, 내장탕. 단출한 메뉴판은 수십 년 전 그대로다.
손님도, 국물도, 가격도 바뀌지 않았다.

“이 맛을 기억하고 오는 사람들이 있어요. 안 바꾸는 게, 제 고집이자 약속이에요.”
말순 씨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국자를 들고, 그릇을 씻고, 다시 불 앞에 선다.
누군가는 ‘왜 아직도 이 고생을 하나’ 말하겠지만, 그녀에게 이곳은 단순한 일터가 아니다.
“사람들이 밥 먹고 나가면서 따뜻했다, 그러면 그게 하루 보람이에요.”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단골은 다양하다.
20년 넘게 오가는 공구상 아저씨, 혼자 와서 말없이 국밥 한 그릇 비우고 가는 중년 여성, 새로 이사 온 청년도 이 집 맛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가게 안은 늘 조용하다.
TV도 라디오도 없다.
대신 국물이 끓는 소리, 수저 부딪히는 소리, 그리고 “잘 먹었습니다” 하는 목소리가 전부다.
나는 생각했다. 이런 곳이 있다는 게 고맙다고.
사람들은 늘 새로움만 찾지만, 진짜 위로는 때때로 ‘그대로 있음’에서 오는 게 아닐까.

김말순 씨는 내게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그저 아침마다 불을 켜고, 국을 끓이고, 손님을 맞이할 뿐이었다.
그 조용한 반복이 누군가에겐 하루를 버틸 힘이 되었다.
※ 본 콘텐츠는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창작 기사이며, 등장 인물은 모두 가명입니다.
※ 본 콘텐츠에는 AI 기반 이미지 생성 도구를 활용한 이미지가 포함되어 있으며, 실제 인물이나 장소와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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