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이 생기고, 마음이 놓였습니다”
[강창모 기자의 귀촌 이야기]

김장 냄새가 처음 코끝에 밴 날이 언제였을까. 하동에 내려온 지 세 달쯤 됐을 무렵이었다.
마을 어귀에 쌓인 배추 더미와 고무대야들을 보며, 아내와 나는 눈빛을 주고받았다. 낯설었지만, 왠지 마음이 끌렸다.
🍂 마을 김장에 첫발을 내딛다
그날 저녁, 이장님이 지나가듯 말했다. “내일 마을 김장합니다. 오셔도 되고, 안 오셔도 되고.” 그 말이 왠지 ‘와도 괜찮다’는 말처럼 들렸다.
밤이 깊도록 아내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서울에선 누군가를 돕기 위해 먼저 다가간 적이 별로 없었다. 이젠 그런 삶을 좀 바꿔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이 가보자."
그렇게 말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 환대 속에서 피어나는 소속감
이튿날 아침, 마을회관 문을 열며 조심스레 들어섰다. 이미 안은 북적였다.
무릎을 꿇고 배추를 다듬는 어르신들, 한쪽에선 양념을 버무리는 아주머니들. 우리를 본 한 분이 환히 웃었다. “서울에서 오신 분들이죠? 잘 오셨어요. 이쪽으로 앉아요.”
그 말에 조금은 굳어있던 어깨가 풀렸다. 고무장갑을 끼고 배추를 들었을 뿐인데, 묘하게 따뜻했다.
옆자리 할머니가 물었다. “서울 사람도 김장 해요?”
마을에서 함께 김장을 하는 모습
그 말에 둘 다 피식 웃었다. “예, 해봤어요. 근데 이건 좀 다른 느낌이네요.”
오전 내내 일손을 보탰고, 점심 무렵엔 따뜻한 국과 막 부친 전을 얻어먹었다.
김장 끝 무렵, 할머니 한 분이 말했다. “이젠 우리 식구네.”
그 말을 들은 순간, 이상하게 울컥했다. 말로 설명하긴 어렵지만, 도시에선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환대였다.
그날 이후, 많은 게 달라졌다.
🌱 자연과 함께, 사람과 함께
아침엔 텃밭으로 나가고, 오후엔 마을 할머니가 된장 담그는 법을 알려주신다.
저녁이면 아내는 마을회관에서 국악 노래를 배우고, 나는 장구를 두드리며 어르신들 틈에서 웃고 있다.
🙋 작은 인사가 주는 큰 위로
“서울에 있을 땐 누가 내 이름 불러주는 일이 별로 없었어요.” 이창수 씨는 그렇게 말했다.
“여기선 장 보러 나가면 꼭 누가 인사해요. 그게 얼마나 따뜻한 일인지, 와서 처음 알았어요.”
🌿 풍경보다 중요한 것
귀촌이란 게 그저 풍경이 예뻐서 선택한 일이 아니었다.
사람 사이의 틈을 좁히고, 다시 말 걸고, 손 내밀며 하루를 쌓아가는 일이었다. 어쩌면 그게 삶의 가장 기본적인 방식이 아니었을까.
기자는 그 부부를 보며 마음 한쪽이 따뜻해졌다. 서울이라는 도시는 편리했지만, 그 안에서 우리가 점점 말수를 잃어갔다는 걸, 이 조용한 마을이 알려주는 것만 같았다.
도시에서 잊었던 '서로 안부를 묻는 삶'을 다시 배우는 곳, 바로 이런 마을이 아닐까.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 낯선 환대를 받아들이는 용기, 그 작은 걸음이 인생을 얼마나 바꿀 수 있는지, 귀촌한 이들의 미소가 말해주고 있었다.
※ 본 콘텐츠는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창작 기사이며, 등장 인물은 모두 가명입니다.
※ 본 콘텐츠에는 AI 기반 이미지 생성 도구를 활용한 이미지가 포함되어 있으며, 실제 인물이나 장소와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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