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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과 돌봄 이야기

(요양과 돌봄 이야기)엄마라 부르던 그 눈빛을 기억하며

💠 기억보다 감정이 오래 남는다는 것

엄마라 부르던 그 눈빛을 기억하며
글: 강창모 전직 기자

“선생님, 오늘도 잘 부탁드릴게요. 저 먼저 나갈게요.”

현관문이 닫히고 나면, 집 안은 고요해집니다. 나는 거실 소파에 앉은 86세 어르신 곁으로 천천히 다가갑니다. 눈빛이 마주치는 찰나의 순간, 오늘도 그분은 나를 처음 보는 듯한 표정을 짓습니다.

그럼에도 나는 늘 같은 인사를 건넵니다. 이 일이 그런 것이니까요. 매일 처음처럼, 그러나 진심으로.

💠 조용한 시간, 마음의 온도

요양보호사로 일한 지도 벌써 8년째입니다. 몸이 힘든 날보다 마음이 힘든 날이 더 많습니다. 기억이 흐릿해져가는 사람과 하루를 보내는 일은, 매 순간 작은 이별을 반복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손 씻으실게요. 따뜻한 물이에요.”

나는 말을 건넬 때 목소리를 살짝 낮춥니다. 귀가 잘 들리지 않아도, 말투에 담긴 온도는 분명 전달되니까요.

어르신의 손을 조심스럽게 닦아드릴 때, 그분은 잠시 눈을 감고 계십니다. 그 조용한 순간 속에, 나는 서로의 평온이 스며들기를 바랍니다.

💠 색칠하며 피어나는 기억

오늘은 색칠공부 책을 꺼내봤습니다. 어르신은 잠시 머뭇거리다 색연필을 집어 드셨습니다. 천천히 한 칸, 한 칸 색을 채워가시다가 나지막이 말합니다.

“이쁘네…”

그 짧은 한마디에, 나는 가슴이 저릿했습니다. 기억은 흐려져도 감정은 남는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는 순간이었습니다.

💠 그리운 이름, 다시 부르다

점심 식사 후, 어르신은 늘 창밖을 바라보십니다. 잠시 후, 나에게 조심스레 물으십니다.

“우리 엄마… 언제 와?”

그 질문에 나는 늘 같은 대답을 합니다. “조금만 기다리면 오실 거예요.” 그 말이 사실이 아님을 나도, 어르신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순간엔 정확함보다, 외롭지 않다는 마음이 더 필요하다는 걸 압니다.

💠 따뜻한 동행, 그 이름은 돌봄

오후가 지나고 딸이 돌아옵니다. 문이 열리고, 환한 얼굴로 어르신을 부릅니다.

어르신은 그 얼굴을 한참 바라보다가, 조용히 한 마디를 꺼냅니다.

“…엄마.”

딸의 눈가가 붉어집니다. 나는 조용히 고개를 숙입니다. 이 장면을 볼 때마다 마음이 뭉클해지고, 이 일이 얼마나 귀한 일인지 새삼 느끼게 됩니다.

💠 내일도 함께해요

요양이란 건, 꼭 무언가를 '해주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저 곁에 있어주는 것, 하루를 함께 살아주는 것. 나는 이 일에서 그렇게 배웠습니다.

오늘도 어르신의 손을 조심스럽게 잡으며 속으로 인사합니다.

“내일도 함께해요. 낯설어도 괜찮아요.”

※ 본 콘텐츠는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창작 기사이며, 등장 인물은 모두 가명입니다.
※ 본 콘텐츠에는 AI 이미지 생성 도구를 통해 연출된 이미지가 포함되어 있으며, 실제 인물이나 장소와는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