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이 비워진 자리에도 남는 사랑
글: 강창모 전직 기자
엄마의 기억이 흐려질 때
“엄마, 저예요. 지은이예요.”
“…지은…”
박지은 씨(52)는 저녁마다 조용히 어머니 방의 문을 연다. 퇴근 후 피곤한 몸을 이끌고, 매일 같이 반복되는 인사다.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날마다 다르다. 때론 기억의 조각이 반짝이고, 때론 아예 낯선 얼굴로 돌아온다.
84세의 김말순 여사. 지은 씨의 어머니다. 2년 전,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았다.

병원이 아닌 집을 선택한 이유
어머니는 종종 딸의 이름을 잊는다. 이름만이 아니다. 자신이 밥을 먹었는지, 지금이 몇 시인지, 여기가 어딘지도. 그럴 때마다 지은 씨는 마음 한구석이 뭉클해진다.
“그냥… 엄마가 다시 태어난다고 생각해요. 오늘은 그 첫날.”
지은 씨는 오랜 고민 끝에 요양병원이 아닌 ‘집’을 선택했다. 냄새 나는 병원 벽 대신, 추억이 밴 벽지와 햇살이 드는 창가. 어머니가 살아온 공간에서 남은 시간을 보내게 하고 싶었다.
익숙해지는 낯선 일상
요양보호사의 방문은 처음엔 어색했다. 모르는 사람이 집에 들락날락하고, 어머니는 경계심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시간이 약이었다.
“할머니, 오늘은 간장 조금만 넣었어요. 어제 너무 짜셨죠?”
“에이, 그건 네가 간 안 봐서 그런 거지~”
“다음엔 같이 봐요, 우리~”
낯설던 목소리는 어느덧 집 안을 채우는 익숙한 리듬이 되었다. 김 여사의 표정에도 조금씩 온기가 돌기 시작했다.
기억보다 오래 남는 감정
“어릴 적 감기 걸렸을 때 기억나요?”
“엄마가 내 이마에 손 얹고 노래 불러줬어요. 그때 얼마나 포근했는지 몰라요.”
지은 씨는 어머니 곁에 앉아 조용히 말을 건넨다. 대답은 없지만, 어머니는 그녀의 손을 꼭 잡는다. 이름은 몰라도, 그 따뜻한 감촉만큼은 기억하는 듯했다.
그 순간, 지은 씨는 생각했다. ‘기억은 사라져도, 감정은 남는구나.’

요양은 단순한 수발이 아니다. 그것은 함께한 시간만큼 깊어지는 약속이고, 사라져가는 존재를 끝까지 붙드는 마음이다.
지은 씨는 오늘도 다시 문고리를 잡는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다시 한번 다짐한다.
“오늘도 엄마와의 하루를 시작합니다.”
※ 기억이 흐려져도 마음은 남아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꼭 잡고, 매일을 함께 살아가는 이들. 그 평범한 하루하루가, 사실은 가장 깊은 사랑의 증거입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기억이 아니라, 마음입니다.
※ 본 콘텐츠는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창작 기사이며, 등장 인물은 모두 가명입니다.
※ 본 콘텐츠에는 AI 기반 이미지 생성 도구를 활용한 이미지가 포함되어 있으며, 실제 인물이나 장소와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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