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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과 돌봄 이야기

(요양과 돌봄 이야기)엄마가 작아진다

엄마가 작아진다

글: 강창모 전직 기자

🟫 점점 작아지는 엄마, 기억 속의 엄마

“엄마, 된장국 끓였어. 예전처럼 진하게…”

말을 꺼낸 내가 낯설었다.
엄마는 이제 된장과 고추장을 구분하지 못한다.
예전엔 그 짭짤한 냄새만 맡아도 내가 학교에서 돌아왔다는 걸 아셨는데,
지금은 그 향을 느껴도 낯설어한다.

🟫 잊혀지는 이름, 지워지는 얼굴

엄마는 어느 날부터 조금씩 멀어졌다.

먼저 이름을 자꾸 잊었고,
거울 앞에서 “이 사람이 누군지 모르겠다” 말하던 날은
마음속 무언가가 꺼져버리는 느낌이었다.

나도 처음엔 받아들이지 못했다.
엄마가 엄마가 아니라는 현실.
자꾸 물어보는 같은 말, 갑자기 화내는 모습,
낯설어지는 목소리.
혼자 울면서 엄마 몰래 방에 들어가 문을 닫던 날이 많았다.

그러다 어느 날, 누군가 내 등을 툭 두드리듯 말해줬다.
“그 무게, 혼자 들지 않아도 돼요.”
그 말 하나가 꽤 오래 마음에 남았다.

🟫 한 사람으로서의 엄마, 한 사람으로서의 나

지역 복지센터에 연락을 했다.
요양보호사 선생님이 오셨다.

엄마 손을 잡아주며 이름을 천천히 불러주고,
낯선 사람에게도 존중을 담아 말을 건네는 모습을 보며
내가 잊고 있던 무언가가 떠올랐다.

엄마는 내 엄마지만, 누군가의 보호를 받을 자격이 있는 ‘한 사람’이기도 하다는 것.

나는 엄마의 딸이기 전에,
이 변화 앞에서 흔들리고 두려워했던
그저 한 사람이라는 것.

🟫 말보다 손, 함께하는 시간

요즘 나는 엄마 옆에 앉아 조용히 라디오를 함께 듣는다.
말은 거의 없지만,
가끔 엄마 손이 내 손을 살짝 덮을 때
아, 아직 여기에 계시는구나 싶은 마음이 들곤 한다.

“좋은 사람이야… 너.”

엄마가 그렇게 말했을 때, 나는 울지 않았다.
대신 미소를 지었다.

기억이 아니라 마음에 남는 무언가가 있다는 걸
그날 처음 알았다.

돌봄은 누군가를 챙긴다는 말보다,
같이 버텨낸다는 말이 더 맞는 것 같다.

오늘 하루, 같이 무너지지 않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잘한 거니까.

※ 본 콘텐츠는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창작 기사이며, 등장 인물은 모두 가명입니다.
※ 본 콘텐츠에는 AI 기반 이미지 생성 도구를 활용한 이미지가 포함되어 있으며, 실제 인물이나 장소와 무관합니다.

💌 누군가의 기억이 작아질 때, 우리는 그 마음의 빈자리를 어떻게 채워야 할까요? 말보다 손, 지식보다 공감이 더 중요한 순간들이 있습니다. 오늘도 우리 곁의 누군가를 천천히 들여다봐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