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과 돌봄 이야기, 내가 그 사람의 다리가 되어줄게요

요양과 돌봄 이야기, 내가 그 사람의 다리가 되어줄게요

글: 강창모 전직 기자

💧 침묵의 시간, 그 속에서 피어난 감정

“이젠 내가 그 사람의 다리가 되어주는 거예요.”

말끝을 살짝 떨며 웃은 사람은 박경자 씨, 올해 예순여섯입니다.

그녀는 2년 전, 갑작스러운 중풍으로 쓰러진 남편을 지금까지 곁에서 돌보고 있습니다. 남편은 한쪽 팔다리를 거의 쓰지 못하고, 말도 부정확해졌습니다. 이제는 두 사람 사이의 대화도 눈빛과 손끝으로 이루어지는 날이 더 많습니다.

“처음엔 그 사람이 저를 자꾸 피하려고 했어요. 미안하다고, 혼자 있게 해달라고… 근데 저는 그게 더 마음이 아팠어요.”

🛠 과거의 손길, 그리고 상실의 무게

남편은 평생 손으로 일해온 사람이었습니다. 동네 철물점을 30년 넘게 지켰고, 작은 손재주 하나로 주변 사람들의 문고리를 고쳐주곤 했습니다.

그런 사람이 하루아침에 걷지 못하게 되었고, 말까지 제대로 할 수 없게 되었을 때, 그는 스스로를 ‘짐’이라 불렀습니다.

“난 이제 쓸모없어.” 그 말 한마디에 박 씨는 주방에 들어가 몰래 울었습니다.

그녀는 매일 새벽, 남편의 몸을 닦아주고 아침 죽을 끓입니다. 간병인 없이 시작했던 첫 몇 달은 육체보다 마음이 먼저 무너졌습니다.

말없이 창밖만 바라보던 남편의 눈빛이, 그 어떤 말보다 더 깊은 무력감을 안겨주었기 때문입니다.

🧶 작은 도움, 다시 시작된 일상

그러던 중 복지관을 통해 요양보호사 서비스를 신청하게 되었고, 그때부터 조금씩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씻기는 걸 도와주시는 것만으로도 숨통이 트이더라고요. 그 시간에 제가 아침 준비도 하고, 병원 예약도 하고요.”

요양이란 단어는 누구에게나 무겁습니다. 하지만 박 씨는 그 안에서 ‘다시 살아가는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남편이 잠든 틈에 그녀는 조용히 뜨개질을 하고, 작은 메모지에 편지를 씁니다. 가끔 남편의 손에 그 편지를 쥐여줄 때면, 그는 아무 말 없이 눈을 감습니다.

🌸 다시, 함께 걷는 길

“기억은 잊혀져도 감정은 남더라고요. 그이 얼굴에 미소가 피는 걸 보면, 아직 우리 사이엔 뭐가 있다는 걸 느껴요.”

박 씨는 요즘, 작은 소망 하나를 갖고 살아갑니다. 봄이 되면 남편을 휠체어에 태우고 벚꽃길을 함께 걸어보는 것.

예전엔 나란히 걷던 길이었지만, 지금은 그녀가 미는 길이 되었을 뿐.

“같이 걸어간다는 건 마음을 나누는 거잖아요. 그 마음만은, 지금도 그대로예요.”

나는 박 씨를 보며 생각했습니다. 어떤 사랑은 말로 하지 않아도 전해지고, 어떤 돌봄은 수고가 아니라 삶의 방식이 된다는 걸.

📝 기자의 시선 — 따뜻한 감정은 기억보다 오래 남는다

박 씨의 일상은 누군가에게는 평범해 보일지 몰라도, 그 속엔 끝없는 사랑과 인내가 녹아 있습니다. 남편의 불편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오늘을 살아가는 그녀의 모습은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안겨줍니다.

돌봄은 의무가 아닌 선택이 될 때, 그것은 사랑이 됩니다.

그리고 그런 사랑은, 침묵 속에서도 흐릅니다.

※ 본 콘텐츠는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창작 기사이며, 등장 인물은 모두 가명입니다.
※ 본 콘텐츠에는 AI 기반 이미지 생성 도구를 활용한 이미지가 포함되어 있으며, 실제 인물이나 장소와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