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엄마 밥을 짓습니다
글: 강창모 전직 기자

혼자이지만 둘처럼 살아온 세월
“아침에 제일 먼저 하는 일이 뭐냐고요? 된장국 끓이는 거예요.
엄마가 그걸 좋아하시거든요.”
조윤정 씨(43)는 지금, 노모와 단둘이 살고 있다.
올해로 여든하나 된 어머니는 3년 전 뇌경색 진단을 받고 몸을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하게 됐다.
처음엔 잠깐일 줄 알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몸은 무거워졌고, 기억도 흐려졌다.
요즘은 하루에 몇 번씩 “오늘이 며칠이더라” 하고 묻는다.
기억 속의 엄마와 지금의 엄마
“엄마는 늘 저보다 기억력이 좋았어요. 학교 숙제도 도와주시고, 시장에서 일하다 오셔서도 제 얘기 다 들어주시고.
그런 분이 지금은 거실 소파에 앉아서 같은 말을 반복하시는데… 처음엔 마음이 참 무너졌어요.”
윤정 씨는 외동딸이다. 어린 시절부터 엄마와 단둘이 살아왔다.
아버지는 기억에 없다. 엄마는 늘 “아빠 없이도 잘 살아보자”며 묵묵히 일했다.
그렇게 자라온 딸은 결국, 엄마를 다시 품에 안고 살아가고 있다.
직장을 그만두고 프리랜서 일을 시작한 지도 벌써 2년째다.
엄마 곁을 오래 비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루의 루틴, 그리고 작은 숨구멍
이른 아침 된장국 냄새로 하루를 여는 집.
부엌에서 국을 끓이고 약을 챙기고, 조용히 문을 열어 엄마 방으로 들어간다.
이제는 익숙한 하루의 루틴이다.
“엄마 얼굴 닦아드리고 손을 꼭 잡아드리면, 그제야 저도 안심이 돼요.”
요즘은 주 3회 요양보호사가 집으로 찾아온다.
목욕을 시켜주고, 가벼운 대화를 나눠주기도 한다.
그 시간만큼은 윤정 씨도 모처럼 노트북 앞에 앉아 일에 집중한다.
“그나마 숨 돌릴 틈이 생긴 거죠. 그 시간 없었으면 아마… 버티기 힘들었을 거예요.”
조용한 책임, 오래된 사랑
그래도 그녀는 엄마 앞에서는 웃는다.
가끔은 혼자 화장실에서 눈물을 훔치기도 하지만, 돌아서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밥상을 차린다.
그건 책임이기도 하고, 오래된 정이기도 하다.

지금 여기에서 피어나는 하루
“엄마가 가끔 그래요. 내가 짐이지? 그럼 저는 그래요.
아니야, 엄마는 내가 살아가는 이유야.”
요양이라는 말은 때때로 버겁고, 때때로 슬프다.
하지만 윤정 씨의 하루는 그 안에서 다시 피어나고 있었다.
작은 식탁, 한 그릇의 국, 그리고 두 사람이 오가는 따뜻한 눈빛.
그 모든 것이 그녀에겐 ‘사는 일’이었다.
나는 그녀를 보며 생각했다.
돌봄이란, 거창한 헌신보다 일상의 반복 속에서 피어나는 사랑이라는 걸.
말보다 눈빛으로, 말없이 지켜주는 시간으로 이루어지는 조용한 믿음 말이다.
오늘도 윤정 씨는 된장국 냄새로 하루를 시작할 것이다.
누구에게는 평범한 식탁이지만, 그녀에게는 살아있다는 증거이고, 사랑의 모양이다.
※ 본 콘텐츠는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창작 기사이며, 등장 인물은 모두 가명입니다.
※ 본 콘텐츠에는 AI 기반 이미지 생성 도구를 활용한 이미지가 포함되어 있으며, 실제 인물이나 장소와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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