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요양과 돌봄 이야기

요양과 돌봄 이야기 15편 《아내의 마지막 산책》

※ 본 콘텐츠는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창작 기사이며, 등장 인물은 모두 가명입니다.
※ 본 콘텐츠에는 AI 기반 이미지 생성 도구를 활용한 이미지가 포함되어 있으며, 실제 인물이나 장소와 무관합니다.

요양과 돌봄 이야기 15편

《아내의 마지막 산책》

글: 강창모 전직 기자


🍃 “바람 좀 쐬고 싶다”던 그날

“그날 아침, 아내가 말했어요.
‘바람 좀 쐬고 싶다’고요.
정말 오랜만이었죠. 그렇게 말한 게.”

윤재민 씨(68)는 그 순간을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합니다.

요양병원 침대에 누워 지내던 아내가 오랜만에 꺼낸 그 말. 그게 마지막 산책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평범한 한 문장이, 마지막 인사처럼 마음에 새겨졌습니다.


🌤 창밖을 바라보던 아내의 얼굴

아내는 폐암 말기였습니다.
체중은 눈에 띄게 줄었고, 말수도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날은 달랐습니다.
창밖을 오래 바라보던 아내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조금… 나가볼 수 있을까.”

윤 씨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마치 오래 기다린 말을 들은 듯이요.

그 짧은 부탁이, 두 사람의 마지막 추억이 되리란 걸
그는 아직 몰랐습니다.


☀️ 따뜻했던 햇살, 뜨거웠던 손끝

휠체어에 담요를 덮고 그녀의 손을 감싸쥔 채 조심스레 병원 뒤뜰로 향했습니다.

봄볕이 내려앉은 벤치 옆, 바람은 느리게 불고 꽃나무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졌습니다.

아내는 눈을 감았다 떴다 하며 햇살을 가만히 느꼈습니다.

“좋다…” 그 말만 몇 번을 중얼거렸습니다.

그날, 말은 거의 없었지만 서로의 손끝은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습니다.

그 짧은 산책이, 두 사람에게 남은 사랑의 마지막 모양이었습니다.


🌙 마지막 인사는 바람에 실려

그로부터 일주일 뒤, 아내는 조용히 세상을 떠났습니다.

남편의 손을 다시 잡지도, 마지막 인사도 남기지 못한 채 아무 말 없이 눈을 감았습니다.

“그날이 마지막이었어요.
그날 함께 나눈 공기,
그게 우리 마지막 인사였어요.”

윤 씨는 그 말을 꺼내며 천천히 숨을 들이쉬었습니다.

그날의 공기, 그날의 햇살, 그리고 짧은 미소. 모두가 마지막이었고, 동시에 끝나지 않은 기억입니다.


🍂 돌봄은 작별을 배우는 시간

요양과 돌봄이란 건 단지 누군가를 돌보는 일이 아닙니다.

그건 사랑을 다 써내려가는 시간이며, 남은 온기를 더 깊이 느끼는 일입니다.

어쩌면 그 짧은 산책이 서로가 서로를 마음속에 오래도록 남기는 방식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사랑은 꼭 말로 하지 않아도, 따뜻한 햇살 속에서 전해지기도 합니다.


🌸 봄이 오면 다시 찾는 자리

지금도 봄이 오면 윤 씨는 병원 뒤뜰 벤치에 혼자 앉아 그날을 떠올립니다.

“그 사람, 그날 참 많이 웃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마지막 선물이었나 싶어요.”

그 웃음은 사라졌지만, 그날의 바람과 햇살은 아직도 그의 마음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녀는 떠났지만, 그날의 온기와 향기는 지금도 윤 씨 곁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