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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과 돌봄 이야기

요양과 돌봄 이야기 11편 《목욕탕 데려다주는 날》

※ 본 콘텐츠는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창작 기사이며,
등장 인물은 모두 가명입니다.
※ 본 콘텐츠에는 AI 기반 이미지 생성 도구를 활용한 이미지가 포함되어 있으며,
실제 인물이나 장소와 무관합니다.


요양과 돌봄 이야기 11편

《목욕탕 데려다주는 날》

글: 강창모 전직 기자

 

매주 목요일, 정해진 약속처럼

“아버지랑 목욕 다녀왔어요.”

최재훈 씨(61)는 매주 목요일,

 

아버지를 모시고 동네 목욕탕에 갑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럴 일이 있으랴 싶었는데,
이제는 일상처럼 몸에 익었습니다.

아버지는 올해 여든여섯.
허리가 굽고 다리가 불편해도
“사람들 좀 보고 와야지” 하시며
목욕탕만큼은 꼭 가고 싶어 하셨습니다.

“사람들 속에 섞이면
덜 늙은 기분이 들어.”

그 말에, 최 씨는 가슴이 턱 막히는 느낌이었습니다.

등을 밀며 느끼는 시간의 흐름

목욕탕에서 아버지는 조심조심 움직였습니다.
작은 의자에 앉아 천천히 물을 끼얹고,
비누칠을 하다 말고 잠시 쉬시고,
그러다 등을 내미셨습니다.

최 씨는 조용히 수건을 들어
아버지의 등을 밀기 시작했습니다.
주름진 어깨, 흠칫거리는 숨결,
작아진 등이 손끝으로 느껴졌습니다.

“옛날엔 아버지가 제 등을 밀어주셨죠.
지금은 제가 밀고 있고요.”

그의 말에 긴 여운이 묻어났습니다.

목욕 후, 잔잔한 여운

목욕을 마친 뒤,
두 사람은 대기실 벤치에 앉았습니다.

 

아버지는 종이팩 우유를 조심스레 드셨고,
최 씨는 삶은 계란 껍질을 까며
아무 말 없이 아버지를 바라봤습니다.

창문 너머 오후 햇살이 부드럽게 비치고,
두 사람 사이엔 오직 ‘지금 이 순간’만 있었습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버지가 문득 말했습니다.

“재훈아, 고맙다.
내가 이렇게 늙어서도
너 같은 아들 있어서 참 다행이야.”

돌봄은 말보다 깊은 감정

그 말에, 최 씨는
운전대를 잡고 있던 손에 자기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습니다.

울컥하는 마음이 고개를 들었습니다.

돌봄이란 게
병원비나 수발보다
그냥 곁에 있어주는 거라는 걸
그날, 그 한마디로 다시 깨달았습니다.

함께한 그 하루가 남긴 온기

목욕탕 데려다주는 목요일.
그 하루가
아버지의 남은 삶에 작은 활력이고,

최재훈 씨에게는
‘아버지의 아들로 남을 수 있는 시간’입니다.

지나고 나면 사소해 보일지도 모를 하루.
하지만 그 하루가 쌓여 추억이 되고,
그 추억은 언젠가 큰 위로로 돌아올 겁니다.

돌봄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오늘, 곁에 있는 사람의 등을 조용히 밀어주는 것.
그 마음이면 충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