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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과 돌봄 이야기

요양과 돌봄 이야기 17편 《아들의 목소리는 약처럼 들렸대요》

요양과 돌봄 이야기 17편

《아들의 목소리는 약처럼 들렸대요》

※ 본 콘텐츠는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창작 기사이며, 등장 인물은 모두 가명입니다.

글: 강창모 전직 기자

목소리 하나로 전해진 온기

“선생님 목소리가 들리면 아버님 표정이 조금 달라지세요.” 의사 선생님의 그 한마디에 김태영 씨(60)는 잠시 눈을 감았습니다.

그 말 한 줄에, 자신이 했던 모든 방문이 헛되지 않았음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태영 씨의 아버지는 뇌경색 후유증으로 언어를 잃었습니다. 눈빛도 희미했고, 표정은 거의 없었죠. 하지만 병실 문을 열고 “아버지, 저 왔어요”라고 인사하는 순간, 그 무표정한 얼굴이 어딘가 살짝 바뀌곤 했습니다.

“그 작은 반응이 저에겐 너무나 컸어요. 아버지가 아직 제 목소리를 기억하시는구나, 싶었죠.”

심장에 닿는 목소리

어느 날, 간호사가 조심스레 말했습니다. “김 선생님 말씀 들을 때마다 아버님 심박이 미세하게 올라가요. 살아 있는 반응이 느껴져요.”

그 말을 들은 뒤로는 태영 씨의 목소리가 한층 더 부드러워졌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손을 감싸 쥐고, 귓가에 조용히 속삭였습니다.

“아버지, 오늘은 우리 옛날 낚시 간 얘기 해드릴게요. 그때 붕어 잡으신 거, 기억나세요?”

말은 돌아오지 않았지만, 그날 아버지의 손가락이 살짝 움직였습니다. 그 순간, 태영 씨는 그것이 대답임을 알아차렸습니다.


말이 아닌 대화

아무도 설명하지 않았지만, 그 작은 손끝의 떨림은 충분한 메시지였습니다. 태영 씨는 그 움직임 속에서 아버지의 응답을 들었죠.

“우리가 나눈 마지막 대화는 말이 아니었어요. 느낌, 온기, 그리고 기다림이었죠.”

그것은 언어보다 더 깊이 마음에 새겨진 대화였습니다.

사람이 떠나가는 시간 속에서도, 온기는 오히려 더 선명하게 남았습니다.


돌봄은 끝까지 지키는 마음

요양과 돌봄은 무언가를 돌보는 시간이면서, 동시에 무언가를 천천히 떠나보내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사라지는 말 사이로 더 또렷하게 전해지는 마음, 그 조용한 사랑은 오히려 오래 남습니다.

태영 씨는 지금도 아버지가 남긴 ‘그 느낌’을 가슴 한켠에 간직하며 살아갑니다.

“말은 없었지만 아버지는 매번 제 목소리를 들어주셨어요. 그거면 충분했죠.”

그 믿음 하나로 그는 끝까지 아버지 곁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따뜻한 마무리

아버지의 말은 사라졌지만, 아들의 목소리는 끝내 닿아 있었습니다. 돌봄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곁에서 작은 온기를 전해주는 것임을 이 이야기는 보여줍니다.

때로는 말보다 따뜻한 목소리, 눈빛보다 깊은 손길이 누군가의 생을 지탱하는 마지막 힘이 되기도 합니다.

오늘도 우리 곁에서 보이지 않게 이어지는 수많은 돌봄의 순간들을 떠올리며, 그 소중한 마음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닿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