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콘텐츠는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창작 기사이며, 등장 인물은 모두 가명입니다. ※ 본 콘텐츠에는 AI 기반 이미지 생성 도구를 활용한 이미지가 포함되어 있으며, 실제 인물이나 장소와 무관합니다.
일상 속 사람 이야기 13편 — 《한 그루 나무처럼, 그녀의 하루》
글: 강창모 전직 기자
햇살 아래, 말없이 실을 엮는 손

경기도 양평 끝자락. 마을 어귀, 햇살 고운 벤치 위에 김정순씨(74)가 오늘도 말없이 앉아 있다. 손엔 익숙한 뜨개바늘이 들려 있고, 그 옆엔 잘 감긴 실뭉치가 바구니 속에 담겨 있다.
“뭘 떠요, 그렇게 매일?” 누가 묻자, 그녀는 빙긋 웃는다. “글쎄요, 생각이 자꾸 실처럼 흘러서요. 그걸 좀 엮고 있는 거죠.”
혼자인 듯, 외롭지 않은 삶
정순 씨는 혼자 산다. 남편은 10년 전 조용히 세상을 떠났고, 두 자식은 다 서울로 갔다.
처음엔 마음이 덜컥 비워진 것 같았단다. 낮은 소리도 크게 들리고, 시간이 참 느릿하게 흘러서 괜히 눈물이 나곤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시간이 지나니 바람 소리, 풀벌레 소리, 텃밭 옆 고양이 숨소리까지 그 모든 게 위로처럼 느껴졌다.
“여긴… 나를 조용히 안아주는 곳이에요. 그래서 안 떠나요.”
단순하지만 꽉 찬 하루
하루는 단순하다. 아침엔 커피 한 잔 들고 마당을 천천히 걷고, 점심쯤엔 마을회관에서 이웃들과 수다도 떨고, 오후엔 이 벤치에 앉아 뜨개질하며 해를 보낸다.

누가 보면 심심하겠다 싶겠지만 그녀는 말한다.
“그 심심한 시간이 참 고맙더라고요. 사람은 가끔 멍할 줄도 알아야 해요.”
바람과 실이 엮는 미소
가을바람이 살며시 불어오고, 뜨개질하던 실이 발끝에서 느슨하게 풀린다. 정순 씨는 바늘을 멈추지 않는다. 실을 천천히 감아 올리며 햇살을 머금은 미소를 지어 보인다.
“나는 지금, 이 속도가 딱 좋아요. 마음도, 몸도, 딱 이만큼이면 돼요.”
한 그루 나무처럼
돌아가는 발걸음은 작고 느렸지만 단단했다. 마치 땅에 뿌리 내린 나무처럼.
오늘도 양평 어느 시골 마을엔 한 그루 나무 같은 여인이 자신의 하루를 정성껏 엮고 있다.
누군가는 세상의 속도를 따라가기 바쁘고, 누군가는 그 속도에서 벗어나 자기만의 리듬을 만들어 간다. 김정순 씨의 하루는 마치 실 한 가닥처럼 단단하면서도 유연하다. 그녀가 엮는 시간은, 우리에게도 조용한 위로가 되어 하루를 조금 더 부드럽게 감싸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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