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콘텐츠는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창작 기사이며, 등장 인물은 모두 가명입니다.
일상 속 사람 이야기 15편
《노을빛 파출소, 강 경사의 마지막 순찰》
글: 강창모 전직 기자
👮 “그래서 오래도록, 떠나지 못했죠”

“여긴… 하루하루가 참 따뜻했어요.
그래서 오래도록, 떠나지 못했죠.”
경기도 양평.
작고 낡은 파출소 앞에서 강창수 경사(63)가 제복 자락을 정리하고 있었다.
서랍 안 수첩도, 벽에 걸린 낡은 시계도 그와 함께 세월을 살아온 듯 고요했다.
오늘이 그의 마지막 근무일이다. 하지만 그 고요함은 어쩐지 이별을 닮지 않았다.
📔 수첩 하나, 오래된 커피잔, 그리고 바랜 무전기
책상 위엔 메모가 빼곡한 수첩 한 권, 찌든 흔적이 남은 커피잔, 그리고 고장 난 무전기 하나가 말없이 놓여 있었다.
“요즘 친구들은 앱이 익숙하지만, 난 이런 게 좋아요. 손으로 적으면, 그 순간이 오래 남거든요.”
그의 일터는 늘 조용했다.
긴급 호출도, 위급 상황도 거의 없었다.
하지만 강 경사는 그 조용한 하루하루를 무척이나 소중히 여겼다.
🧑🤝🧑 “오늘도 나오셨어요?”
골목 시장을 지나면 떡집 할머니가 먼저 손을 흔들고,
초등학교 앞에선 아이들이 인사를 건넨다.
“안녕하세요, 경사님!”
그는 언제나 미소로 답했다.
그에게 순찰이란, 문제를 해결하는 일보다는 사람을 만나는 일이었다.
겨울엔 홀몸 어르신께 전기장판을 챙겨드리고,
여름엔 땀 흘리는 청년에게 음료수를 건넸다.
누구보다 느긋하게, 그러나 누구보다 진심으로 동네를 지켜온 사람.
🌇 마지막 순찰은 천천히, 아주 천천히

퇴근을 앞두고 그는 동네를 한 바퀴 더 돌기로 했다.
창밖으론 노을이 번지고, 창문 너머 골목들은 여전했다.
“마지막이란 느낌이 안 들어요. 내일도 그냥… 다시 나올 것 같아요.”
그 말끝에 그의 걸음은 더 느려졌다.
발밑의 돌부리 하나, 익숙한 가게의 불빛 하나까지 오래도록 눈에 담았다.
그는 그 길 위에서, 34년을 살아냈다.
🚓 “누군가는 먼저 나가야 하잖아요”
철물점 강도 사건이 있었던 어느 날.
강 경사는 맨손으로 상대를 제압했다.
언론 인터뷰도, 포상도 거절했던 그는 동료의 질문에 짧게 말했다.
“겁나죠.
그렇지만 경찰은 겁난다고 말 못 해요.
누군가는… 먼저 나가야 하니까요.”
그 말은 후배들 사이에서 오래도록 기억되는 문장이 되었다.
👏 퇴근 벨 대신, 박수로 떠나는 사람
해가 저문 저녁 여섯 시.
파출소 앞엔 동료들과 동네 사람들이 하나둘 모였다.
“경사님, 수고 많으셨어요!”
한 초등학생이 조심스럽게 내민 편지 한 장.
“매일은 못 뵈어도, 우린 괜찮을 거예요. 강 경사님이 지켜주신 마을이니까요.”
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순찰차 문을 닫는 그의 손끝에 34년의 시간이 살며시 스쳤다.
그 순간, 이 마을 모두가 그의 마지막 순찰을 함께 걸었다.
🚶 아직도… 그 골목 어귀엔
제복은 벗었지만 사람들은 지금도 그를 ‘우리 동네 경찰’이라 부른다.
“문 앞에 누가 오래 서 있으면요… 나도 모르게 나가 보게 돼요. 그게, 몸에 밴 거죠.”
그의 순찰은 끝났지만,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그는 여전히 천천히, 골목을 돌고 있을지 모른다.
누군가는 떠났지만, 그 자리에 남은 온기만큼은 오랫동안 사람들 곁에 머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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