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니어 창업 이야기

퇴직 후 시작한 작은 반찬 가게, 60대 사장의 따뜻한 도전

[강창모 기자의 사람 이야기] 퇴직 후 시작한 작은 반찬가게, 60대 사장의 따뜻한 도전

글 | 강창모 기자

은퇴 이후의 공허함, 작지만 큰 용기를 품다

60세 정영자 씨는 30년 넘게 다닌 회사를 정년퇴직하고 나서 처음으로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수십 년간 아침 일찍 출근해 가족을 먹여 살렸지만, 정작 자신을 위한 시간은 없었습니다. 퇴직 후 몇 개월은 자유를 만끽하는 듯했지만, 곧 깊은 허전함이 밀려왔습니다. 하루하루는 길고 의미 없이 흘렀고, 자신이 사회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 무렵, 동네 아파트 단지 앞 소형 상가에 붙은 종이 한 장이 정 씨의 시선을 붙잡았습니다. ‘반찬가게 임대 - 1.5평, 간이주방 있음’ 평소 요리를 좋아하고, 손맛 좋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던 그녀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도 한 번,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세상의 시선을 넘어선 나만의 결심

막상 실행으로 옮기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무엇보다 ‘내 나이에 뭘 시작한다고’라는 주위의 시선과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컸습니다. 하지만 정 씨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 아니면, 아예 못한다.”

그녀는 먼저 동네 주민센터의 시니어 창업 교육에 등록했습니다. 위생관리부터 식자재 구매, 소규모 창업 세무 상식까지 빠짐없이 배웠고, 무엇보다 자신감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약 3개월간의 준비 끝에 ‘영자네 반찬’이라는 이름으로 작은 가게를 열었습니다.

하루 한 명의 손님이 만들어낸 기적

첫날, 가게 앞을 지나가는 사람은 있었지만 들어오는 이는 거의 없었습니다. 그날 정 씨는 자신이 만든 멸치볶음과 오징어채무침을 몇 개 들고 아파트 경비실과 관리사무소를 찾아가 인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조심스레 문을 연 단골 고객 한 명이 생겼습니다. 이윽고 입소문이 났고, 이웃 엄마들 사이에서도 “진짜 옛날 집밥 맛”이라며 이야기가 퍼졌습니다.

정 씨는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장을 보고, 그날의 반찬을 정성껏 준비합니다. 메뉴는 단순하지만 정직합니다. 깻잎장아찌, 콩자반, 동그랑땡 같은 익숙한 반찬들입니다. 화려한 마케팅도 없고, 대형 간판도 없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그 소박함이 고객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필요한 존재로 다시 살아가는 기쁨

가게는 점차 안정되기 시작했고, 주말에는 예약을 받아야 할 정도로 분주해졌습니다. 정 씨는 요즘 한 달에 약 200만 원의 순수익을 올리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의미 있는 것은

“필요한 존재로 다시 살아가는 기쁨”

이라고 말합니다.

“누군가 내 반찬으로 밥상을 차리고, 그 밥상을 먹으며 힘을 내고 살아가는 상상을 하면요,
그게 제겐 하루를 견디게 해주는 에너지예요.”

요즘 그녀는 새로운 꿈도 꾸고 있습니다. ‘시니어 창업 네트워크’를 만들어 동네 어르신들과 함께 소규모 장터를 열고, 반찬 만드는 법도 나눌 계획입니다. 나이는 숫자일 뿐, 마음만 있다면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걸 몸소 보여주고 싶다는 것입니다.


기자의 시선 | 시니어 창업, 그 따뜻한 가능성

정영자 씨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은퇴는 끝일까, 아니면 시작일까?”

요즘은 지자체나 복지관, 중장년 재취업 센터를 통해 무료 창업 교육을 받을 수 있고, 소자본 창업으로도 작고 탄탄한 수익 구조를 만드는 시니어들이 늘고 있습니다.

시작은 거창하지 않아도 됩니다. 하지만 진심과 정성은 반드시 사람의 마음에 닿습니다. 그것이 시니어 창업이 가진 가장 큰 자산입니다.


글 | 강창모 기자
전직 기자로, 사람들의 삶과 이야기를 기록합니다.
시니어 창업과 귀촌, 요양, 그리고 우리 사회의 따뜻한 면을 발굴하는 콘텐츠를 연재 중입니다.


누구에게나 퇴직 후 삶은 처음 겪는 시간입니다. 누군가는 그 시간을 두려움으로 맞이하지만, 누군가는 정영자 씨처럼 조심스럽지만 용기 있게 한 걸음을 내딛습니다. 꼭 대단한 수익이 아니어도, 자신이 '필요한 사람'으로 다시 살아갈 수 있다는 감각. 그것이 곧 삶의 온기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