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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락 한 상자에 담긴 위로, 62세 김상도 씨의 두 번째 출근길 도시락 한 상자에 담긴 위로, 62세 김상도 씨의 두 번째 출근길글 | 강창모 기자이른 아침, 고양시의 어느 아파트 단지.검은색 경차 한 대가 조용히 골목을 빠져나갑니다.차 안에는 정성스럽게 포장된 도시락 열두 개가 실려 있습니다.운전석에 앉은 이는 올해 62세, 김상도 씨.그는 매일 아침, 자신이 만든 도시락을 들고 어르신들을 찾아 나섭니다.정년 이후의 길, 공허함을 채우는 계기김 씨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하루가 참 길다”고 말하던 사람이었습니다.대기업에서 30년을 일하고 정년퇴직한 뒤, 갑자기 닥쳐온 무력감.“내가 할 일이 뭐가 있나” 싶은 나날이 반복됐습니다.주변에선 여행을 가라, 취미를 가져보라 했지만김 씨 마음속 공허함은 쉽게 채워지지 않았습니다.그러던 중, 지인의 한 마디가 그를 움직였습니다.. 더보기
재난지원금은 왜 나에겐 늦게 오는가 – 복지 사각지대에 선 사람들 📰 재난지원금은 왜 나에겐 늦게 오는가 – 복지 사각지대에 선 사람들“통장 잔고 1,200원인데, 나는 왜 빠졌을까…”서울 중랑구, 오래된 반지하 단칸방.58세 김창원 씨는 고시원 청소 일을 하며 하루하루를 버틴다.며칠 전 TV 뉴스에서 들려온 재난지원금 소식에 한 줄기 희망을 품었지만,그의 통장은 여전히 조용했다.“뉴스에선 다 지급됐대요.근데 전 아직 아무것도 못 받았어요.신청 방법이 너무 어렵고, 뭘 눌러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어요.”복지는 있는데, 나는 왜 몰랐을까제도는 분명히 존재한다.하지만 그 존재를 ‘아는 사람’만 쓸 수 있는 현실.정보 격차는 복지 격차로 이어진다.인터넷이나 문자 안내조차 받지 못하는 이들에게재난지원금은 남의 이야기처럼 들릴 뿐이다.2023년 기준, 재난지원금 미신청자 중 3.. 더보기
“국자 든 손에서 따뜻함이 흘렀다 국자 든 손에서 따뜻함이 흘렀다 – 강창모 기자의 일상 속 사람 이야기서울 망원시장.비닐 천막 사이로 햇살이 스며드는 이른 아침, 시장 한쪽에 자리한 국밥집에서 하얀 앞치마를 두른 할머니가 문을 연다.가게 이름은 ‘성심식당’.간판조차 바랬지만, 정작 그 안은 누구보다 따뜻했다.김말순 씨, 올해 74세.이곳에서만 42년째다.남편과 함께 시작했던 작은 가게는 이제 그녀 혼자, 매일 새벽 불을 켜고 국을 끓이는 곳이 되었다.“하루라도 손에 국자가 없으면… 이상해요. 허전하고.”그녀는 웃으며 말했지만, 그 말엔 삶의 고단함이 자연스레 배어 있었다.선짓국, 콩나물국밥, 내장탕. 단출한 메뉴판은 수십 년 전 그대로다.손님도, 국물도, 가격도 바뀌지 않았다. “이 맛을 기억하고 오는 사람들이 있어요. 안 바꾸는 게,.. 더보기
“서울을 떠난 이유, 지리산 아래 작은 마을에서 찾았습니다” “서울을 떠난 이유, 지리산 아래 작은 마을에서 찾았습니다”강창모 기자의 귀촌 이야기 서울에서만 30년 넘게 살아온 이창수(68세) 씨는 퇴직 후 처음으로 ‘나는 이제 어디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고민하게 됐다.매일 아침 눈을 떠도 더 이상 출근할 곳이 없었고, 오후가 되면 텅 빈 거실에 조용히 앉아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했다.🏡 "서울을 떠나기로 결심한 날""어느 날 아내에게 말했어요. 이렇게 하루하루 보내다가는 금방 늙고 말 것 같다고요."두 사람은 한동안 말없이 산책만 했다. 그리고 어느 날, 마주 앉아 결심했다. 🌿 지리산 아래, 새로운 삶의 시작조금 더 자연 가까이에서, 조금 더 우리답게 살아보자. 그렇게 찾아낸 곳이 경남 하동. 지리산 자락에 자리한 작은 마을이었다.오래된 흙집 하나를 .. 더보기
치매 아내의 손을 놓지 않는 남편의 3년 🔹 낯선 시작, 기억을 잃어가는 하루“오늘은 또 몇 살로 돌아갔을까…”이른 아침, 이모 씨(71)는 잠든 아내의 방 앞에 멈춰 섭니다.문고리를 잡는 손끝이 망설입니다.그의 아내는 3년 전,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았습니다.처음엔 밥을 두 번 짓거나, 물건을 엉뚱한 곳에 두는 정도였지만,어느 날 그녀는 남편을 향해 물었습니다.“당신 누구세요?”그 순간, 그는 말할 수 없는 충격을 느꼈습니다.🔹 지켜내겠다는 다짐 하나로이 씨는 평생 교직에 몸담다가 정년을 마친 후,조용한 시골로 내려와 아내와 둘만의 노년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텃밭을 가꾸고, 주말엔 산책을 하고…그렇게 천천히 늙어갈 줄 알았습니다.하지만 인생은 어느 순간, 예고 없이 무너지는 법이었습니다.잠든 아내 곁에서 혼자 울던 밤들이 지나고,그는 결국 .. 더보기
요양과 돌봄 이야기, 당신 손이 곧 나의 길이 됩니다 새벽 다섯 시, 부엌에서 시작되는 하루“같이 걷는다는 게 이렇게 소중한 일이었는 줄 몰랐어요.”김남수 씨, 올해 예순여덟입니다. 그는 여섯 해째 아내를 돌보고 있습니다.교통사고 이후, 아내는 하반신이 마비되어 휠체어에 의지한 삶을 살게 됐습니다.갑작스럽게 들이닥친 현실은 모든 걸 바꿔놓았습니다. 아내의 삶도, 그리고 김 씨의 삶도.새벽 다섯 시. 김 씨의 하루는 부엌에서 시작됩니다.미지근한 물로 아내 손을 씻기고, 조심스레 휠체어에 앉힙니다.매일 먹는 미역국이지만, 그는 국물 맛을 하루도 그냥 넘기지 않습니다.변화된 삶 속, 변하지 않은 사랑김 씨는 건설 현장에서 오래 일했습니다. 거칠지만 성실하게 살아왔고,아내는 늘 조용히 그의 곁을 지켜줬습니다.큰소리 한 번 내지 않고, 서로 눈빛만 봐도 알던 사이... 더보기
손주 간식이 인생을 바꿨다, 60대 할머니의 홈베이킹 도전기 👵 골목길에서 시작된 따뜻한 향기서울 강북구, 오래된 빌라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어느 골목.오후 세 시쯤이면 어디선가 은은한 쿠키 굽는 냄새가 퍼져 나옵니다.버터와 계피가 어우러진 고소하고 달콤한 향기.그 향기를 따라가면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올해 66세, 박정순 씨입니다.박 씨는 퇴직한 남편과 함께 사는 평범한 할머니입니다.주말이면 손주들이 집에 놀러 오고,그 아이들을 위해 간식거리를 챙기는 게 작은 낙이었습니다.🍪 손주를 위한 쿠키가 인생을 바꾸다하지만 손주 중 한 명이 아토피 때문에 시판 과자를 못 먹는다는 말을 들은 날, 박 씨는 무심결에 이렇게 말했습니다.“그럼 할머니가 직접 만들어줄게.”처음엔 마트에서 파는 베이킹 믹스를 사다 쿠키를 구웠습니다.겉은 딱딱하고 안은 설익은, 그런 .. 더보기
요양과 돌봄 이야기, 내가 그 사람의 다리가 되어줄게요 요양과 돌봄 이야기, 내가 그 사람의 다리가 되어줄게요글: 강창모 전직 기자💠 함께 걷던 길, 이제는 내가 밀어주는 길“이젠 내가 그 사람의 다리가 되어주는 거예요.”말끝을 살짝 떨며 웃은 사람은 박경자 씨, 올해 예순여섯입니다.그녀는 2년 전, 남편이 갑작스러운 중풍으로 쓰러지면서 인생의 방향이 바뀌었습니다.한쪽 팔다리를 거의 쓰지 못하게 된 남편, 흐릿해진 말소리. 이제 두 사람의 대화는 눈빛과 손끝으로 이어집니다.💠 마음이 먼저 무너진 시간“처음엔 그 사람이 저를 자꾸 피하려고 했어요. 미안하다고, 혼자 있게 해달라고… 그런데 저는 그게 더 마음이 아팠어요.”남편은 평생 손으로 살아온 사람이었습니다. 동네 철물점을 30년 넘게 운영했고, 망가진 문고리 하나도 그냥 지나치지 않던 사람이었죠.그런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