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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래포구의 새벽을 여는 여자” [강창모 기자의 일상 속 사람 이야기] “소래포구의 새벽을 여는 여자” [강창모 기자의 일상 속 사람 이야기]새벽 4시, 조용히 칼을 드는 여자인천 소래포구.새벽 4시의 공기는 바닷물 냄새로 축축하다.시장은 아직 불이 덜 켜졌고,그 사이 어둠과 형광등 사이에서한 여인이 묵묵히 칼을 들고 있다.30년 칼끝에 담긴 삶의 무게심금자 씨, 예순셋.손에 들린 광어는 커다랗고 묵직했지만그 손놀림은 익숙하고 담담했다.“사람도 생선도,허투루 다루면 금세 알아채요.”금자 씨는 스무 살 때 통영에서 뱃일을 시작했다.고기를 낚고, 얼리고, 손질하고…그의 인생은 바다 냄새로 물들어 있었다.결혼 후 남편 없이 두 아이를 키우며시장에 자리 잡은 지도 어느덧 20년.그 사이 시장은 조금씩 달라졌지만금자 씨의 자리는 그대로다.“칼을 대는 건 기술이지만,그걸 꾸준히 하는 .. 더보기
(귀촌 이야기)우리 할머니는 흙냄새가 난다 – 손자의 눈으로 본 귀촌 이야기 제목: 우리 할머니는 흙냄새가 난다 – 손자의 눈으로 본 귀촌 이야기글: 강창모 기자할머니 집 가는 길은 마음의 쉼터“할머니 집 가는 거, 난 진짜 좋아요.”금요일 오후, 유치원 가방을 메고 뛰어나오면 엄마는 늘 말한다. "우리 민준이, 또 할머니 집 간다~"사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난다. 그건 마치 작은 여행 같기도 하고, 마음이 푹 놓이는 피난처 같기도 하니까.자연과 사람의 냄새가 살아 있는 곳할머니네 집은 경상북도 하동.이름은 좀 어렵지만, 거기 가면 신기한 게 많다. 흙 마당, 꼬질꼬질한 개 누렁이, 시큼한 된장 냄새, 그리고 감나무.서울에서는 하나도 못 본 것들이라서 더 좋다.“아이구 우리 손주 왔네! 밥은 묵었나~”할머니 목소리는 동네 산을 굴러온 바람 같다. 크고 따뜻하다.말없이.. 더보기
(요양과 돌봄 이야기) 기억이 비워진 자리에도 남는 사랑 기억이 비워진 자리에도 남는 사랑글: 강창모 전직 기자엄마의 기억이 흐려질 때“엄마, 저예요. 지은이예요.”“…지은…”박지은 씨(52)는 저녁마다 조용히 어머니 방의 문을 연다. 퇴근 후 피곤한 몸을 이끌고, 매일 같이 반복되는 인사다.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날마다 다르다. 때론 기억의 조각이 반짝이고, 때론 아예 낯선 얼굴로 돌아온다.84세의 김말순 여사. 지은 씨의 어머니다. 2년 전,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았다.병원이 아닌 집을 선택한 이유어머니는 종종 딸의 이름을 잊는다. 이름만이 아니다. 자신이 밥을 먹었는지, 지금이 몇 시인지, 여기가 어딘지도. 그럴 때마다 지은 씨는 마음 한구석이 뭉클해진다.“그냥… 엄마가 다시 태어난다고 생각해요. 오늘은 그 첫날.”지은 씨는 오랜 고민 끝에 요양병원이 아.. 더보기
(시니어 창업 이야기) 빵 냄새로 마을을 깨우는 여자, 67세 이화순 씨의 인생 화덕 빵 냄새로 마을을 깨우는 여자, 67세 이화순 씨의 인생 화덕[강창모 기자의 사람 이야기]글 | 강창모 기자 화덕에서 피어오르는 인생의 온기새벽 6시, 마을 담장 너머로 고소한 냄새가 스며든다.단팥빵, 호두 스콘, 직접 반죽한 버터 식빵이 화덕 안에서 익어가는 그 시간.이른 아침 동네를 조용히 깨우는 건 자명종이 아니라,67세 이화순 씨의 두 손이다.평생의 주방, 그리고 다시 시작된 주방이화순 씨는 평생을 남의 식당 주방에서 보냈다.앞치마를 두르고, 조용히, 묵묵히.늘 누군가의 끼니를 책임져 왔지만 정작 자신은 밥보다 일에 익숙했던 사람.퇴직하고 나서야 주방이 낯설게 느껴졌다.그래서 주방을 다시 시작해보기로 했다. 이번엔 ‘남’이 아닌 ‘자신’을 위해.집 마당 한켠에 작은 화덕을 들여놓고, 중고 오븐 하.. 더보기
(사회 이슈 이야기)치매 어머니를 안고 눈물 흘린 딸, 그 하루의 기록 📰 치매 어머니를 안고 눈물 흘린 딸, 그 하루의 기록어머니를 안고 울었던 그날“그날, 나는 말없이 엄마를 안고 울었습니다”경기도 성남. 57세 이선영 씨는 요양병원 병실에 앉아 조용히 어머니를 바라보고 있었다. 침대 위에 누운 어머니는 치매로 대화가 어려운 상태다. “눈을 마주쳐도, 알아보는지 모르겠어요. 그래도 매주 와서 엄마 손을 잡아요.” 그날도 그녀는 아무 말 없이 어머니를 안고 오래도록 울었다.간병은 체력보다 감정이 먼저 무너진다이선영 씨는 지난 3년 동안 식사 보조, 기저귀 교체, 약 챙기기까지 어머니의 모든 일상을 책임졌다. 하지만 감정은 점점 마모됐다. “엄마를 사랑하는 마음은 그대로인데, 하루하루가 너무 고단해요.” 사랑만으로는 돌봄을 이어가기 어렵다는 걸 그녀는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 더보기
“책 속에서 나이 드는 법을 배우는 서점 할머니” [강창모 기자의 일상 속 사람 이야기] 성북동 골목 끝의 조용한 책방책 속에서 나이 드는 법을 배우는 서점 할머니 [강창모 기자의 일상 속 사람 이야기]성북동 골목 끝, 잊힌 듯 조용한 거리에 낡은 간판을 단 작은 책방 하나가 있다.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그곳 문을 열면 먼저 오래된 책 냄새가 반긴다.그리고 한쪽 구석, 두꺼운 털실 조끼를 입고 조용히 책장을 넘기는 한 여인이 보인다.김정희 씨, 일흔네 살. 남편과 함께 시작했던 이 서점을 이제는 혼자 지키고 있다.“책은요, 시간이 쌓여야 손에 잘 감겨요. 사람도 그렇고요.”하루를 책과 시작하는 삶그녀는 하루를 책 정리로 시작한다. 기울어진 책을 바로 세우고, 먼지를 닦아내며 책등을 손바닥으로 한 번씩 눌러준다. 마치 책에게 '오늘도 잘 지내자' 인사하듯.요즘처럼 사람들이 화면 속에서만 읽고, .. 더보기
(요양과 돌봄 이야기)엄마라 부르던 그 눈빛을 기억하며 💠 기억보다 감정이 오래 남는다는 것엄마라 부르던 그 눈빛을 기억하며 글: 강창모 전직 기자“선생님, 오늘도 잘 부탁드릴게요. 저 먼저 나갈게요.”현관문이 닫히고 나면, 집 안은 고요해집니다. 나는 거실 소파에 앉은 86세 어르신 곁으로 천천히 다가갑니다. 눈빛이 마주치는 찰나의 순간, 오늘도 그분은 나를 처음 보는 듯한 표정을 짓습니다.그럼에도 나는 늘 같은 인사를 건넵니다. 이 일이 그런 것이니까요. 매일 처음처럼, 그러나 진심으로.💠 조용한 시간, 마음의 온도요양보호사로 일한 지도 벌써 8년째입니다. 몸이 힘든 날보다 마음이 힘든 날이 더 많습니다. 기억이 흐릿해져가는 사람과 하루를 보내는 일은, 매 순간 작은 이별을 반복하는 것과도 같습니다.“손 씻으실게요. 따뜻한 물이에요.”나는 말을 건넬 .. 더보기
“귀촌 일기 – 노년의 반란, 도시를 떠난 나의 두 번째 인생” 시작은 한 통의 전화였다귀촌 일기 – 노년의 반란, 도시를 떠난 나의 두 번째 인생 [강창모 기자의 귀촌 이야기]서울은 나를 밀어냈고, 시골은 나를 조용히 받아줬다. 그게 내가 이곳을 선택한 이유였다.퇴직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집에 있는 시간이 갑자기 많아졌다. 거실도, TV도, 냉장고도 전처럼 반갑지 않았다.아내와 마주 보는 시간이 길어졌고, 그 사이에 어색한 정적이 자주 끼어들었다.그러던 어느 날, 대학 시절 친구한테 전화가 왔다. “형, 그냥 한번 와봐. 성주는… 공기부터 달라.”결심과 이사, 그리고 새벽의 감나무전화 한 통으로 삶이 바뀐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그날 나는 달랐다.아내와 나는 고민 끝에 광명의 아파트를 정리했고, 경북 성주의 외딴 동네로 이사했다.아무도 우리가 여기까지 내려올 .. 더보기